
조조가 적벽에서 패퇴한 뒤 북쪽을 굳히고 유비가 익주를 손에 넣자 천하는 드디어 세 개의 기둥으로 갈라졌다. 삼국지 4권은 이 균형이 다시 깨져 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촉은 새로 얻은 땅을 다스리며 힘을 기르고, 위는 관중과 하북의 넓은 평야를 군량 창고 삼아 세력을 불린다. 오는 강동의 습한 들판에서 수군을 정비하면서도 촉과의 동맹을 유지할지 말지 저울질한다. 숨 고르기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칼날이 자라고 있었고, 조조·손권·유비 세 영주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군사를 훈련시켰다.
눈길은 먼저 서천의 녹음 짙은 땅으로 향한다. 유장은 구름 같은 근심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익주에는 여전히 토호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유비는 법정·미축·양수 같은 문관에게 향리 세금 체계를 손보게 하고, 방통·황충·위연에게 산악 요새를 정비하게 했다. 백성은 십 년 내내 장로와 마등이 번갈아 약탈하던 불안을 잊고, 새 도로와 수리 시설에 환호했다. 제갈량은 촉군을 북쪽으로 끌어올릴 장안 고도 통행로를 답사하며 “익주는 비단주머니 같으니 허리를 단단히 묶어야 보물을 잃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번기에는 군사 훈련을 줄이고, 추수 뒤에는 전국의 젊은이를 모아 구군제 편성으로 개편했다. 기강이 잡히자 병사들은 이전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일 없이, 빛나는 투구에 촛불을 비추며 밤샘 경계를 섰다.
하지만 촉의 새봄을 가장 먼저 위협한 것은 북서쪽에서 불어온 철기 바람이었다. 장안 서남, 한중을 거느리던 도사 장로는 신선교 도를 믿어 백성을 모았고, 위장은 이를 틈타 변방을 흔들었다. 조조는 스스로 출정해 무도·예산 협곡을 쓸어 버리고, 호로중에서 살아나온 마초·한수를 꺾어냈다. 이어서 들이닥친 목표는 한중에서 무른 신앙만으로 세력을 유지하던 장로였다. 장로는 영곽산 성채에 은근한 흐린 불을 피워놓고 “하늘의 기운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고 외쳤지만, 조조의 쇠전차가 절벽길을 뚫고 올라오자 결국 양평관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리하여 한중은 조조 손에 넘어갔고, 장안과 익주 사이의 마지막 완충지대가 사라졌다. 제갈량은 칠성등잔 밑에서 지도에 붓을 떨어뜨리며 “한중을 잃으면 촉은 굽은 칼끝을 가슴에 얹은 셈”이라 한탄했다.
유비는 즉시 파평의 노장 황충과 준수한 장수 위연을 불러 산악전 대비책을 논했다. 방통은 뜬구름처럼 웃으며 한마디를 제안했다. “먼저 검문도로 곧장 들어가 조조의 전선을 둘로 가르시지요. 호랑이가 울 때 여우가 떤다 합니다.” 유비는 이 계책에 따라 4만 병사를 셋으로 나누어, 그는 김낙패의 검문도로 향하고, 황충과 위연은 타산로와 문선도로로 기민하게 기어올랐다. 촉군의 기백은 조조군을 떨게 했지만, 초반 승세는 불운에 찢겼다. 방통이 낙패 소수멸부 근처에서 갑작스런 화살 세례에 쓰러진 것이다. “봉추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산중 계곡을 뒤덮자 장졸들은 눈물과 동시에 공포를 삼켰다. 유비는 방통의 시신을 명주보에 싸서 송백 아래 묻고, 울음을 억눌러 가며 진용을 재정비했다.
반격은 의외로 담담하게 찾아왔다. 황충이 정군산 꼭대기에서 밤새 토벽을 깎아 급사면을 만들고, 새벽녘에 고삐를 풀어 백마를 내리달렸다. 그 뒤를 3천 경무장 보병이 화살비를 뚫고 돌진했다. 적장 하후연은 화살이 모자라자 보병을 내려 보내 막으려 했지만, 황충은 날쌔게 옆구리를 비켜들어 창끝으로 그의 목을 꿰뚫었다. 장막 밖에서 불길이 솟구쳤고, 정군산을 잃은 위군은 산골협곡을 따라 패주했다. 조홍과 장합이 잔병을 모으려 했으나 황충의 노쇠한 듯한 외모에 방심한 탓에 속수무책이었다. 이 전투로 한중의 균형추가 뒤집혀, 장합은 양평관을 버리고 퇴각했고, 유비는 새벽안개가 걷히자 한중 평야를 굽어보며 “산천이 드디어 내 것이 되었구나” 하고 외쳤다.
승전 소식이 촉의 들녘에 퍼질 때, 백성들은 녹두죽을 끓여 성문을 채웠다. 유비는 한중왕에 즉위하라는 신료들의 추대를 끝내 고사했던 끝에, 제갈량의 권유로 “촉한의 발판에 서는 이름일 뿐”이라며 수락했다. 의관을 단정히 갖춘 그는 천자 대신 뒤뜰에서 북두칠성에 절하며 “백성을 두텁게 하는 군주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이윽고 장사꾼들이 광성진에서 매매를 재개했고, 산비탈에 새 밭이 열리면서 촉은 식량 자급선에 올라섰다.
그러나 한중 승전의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강동에서는 전혀 다른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적벽 이후 촉과 오의 연대는 명목상 든든했지만, 형주 땅이 여전히 공동관리라는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관우가 북벌 야망을 품고 형주를 지키는 동안, 손권은 강북 강릉·공안·남군의 인세와 토지를 탐낼 수밖에 없었다. 여몽은 “큰일을 이루려면 먼저 참을 줄 알아야 한다”며 병으로 눕는 흉내를 내고, 손권은 조조에게 사신을 보내 ‘조공의 벼슬’을 청하는 외교술을 펼쳤다. 겉보기엔 오가 위에 몸을 낮춘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목적은 조조와 잠시 손을 잡고 관우의 뒷마당에 칼을 들이대려는 것이었다.
관우는 한중 승전 이후 형주 병력을 3만에서 7만으로 증원하고, 자신은 파촉을 노리지 않고 북으로 장강을 건너 반성과 상용을 타격했다. 우금·방덕이 수비하던 번성 성벽은 가을 홍수에 잠기고, 관우는 수문을 열어 한수 범람을 유도해 수전으로 바꿔 버렸다. 우금은 아홉 번 전투에서 여섯 번 패했고, 방덕은 적벽 모래톱에서 날선 창으로 혈로를 뚫다 관우에게 붙잡힌다. 방덕은 “전장을 걷는 자가 어찌 죽음을 피하려 드는가”라며 조롱을 받았지만, 결백을 맹세하며 목숨으로 충의를 지켰다. 관우는 그의 기개에 감동해 살려주려 했으나, 장사들이 피를 갈구해 결국 처형을 택했다.
승세가 극에 달하자 관우는 조조의 허를 겨눌 생각까지 품는다. 조조 진영은 사기가 꺾였고, 허창에서는 “번성이 무너지면 위가 끝난다”는 소문이 조용히 떠돌았다. 조조 자신도 도성을 옮길까 고민했지만, 사마의는 “손권이 물러설 리 없으니 화를 동쪽으로 돌려라”라고 조언했다. 바로 그때, 강동에서 흰옷 군단이 장강을 건넜다. 여몽이 병이 나았다는 소식과 함께 ‘백의 종군’이라 불리는 기습이 시작된 것이다. 겨울 강을 건너며 병사들은 상인과 나루꾼으로 변장했고, 무기 대신 장작과 가마니를 들었다.
여몽의 선봉이 공안을 무혈 입성하자, 남군의 수십 성이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백성들은 촉의 병사가 다시 올 줄 알고 문을 열었다가, 오의 태극 깃발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관우가 번성 포위한 지 넉 달째 되던 날, 그는 자기 뒤에 불길이 번지고 있다는 첩보를 받는다. 장수 장포·미방이 맡았던 후방 군량로가 끊긴 것이다. 미방과 부사인 부사인은 여몽의 회유에 넘어가거나 공포에 굴복해 성문을 열어 주었다. 관우는 분노로 창대를 부러뜨릴 뻔했지만, 이미 수로가 막혀 보급이 끊긴 군사는 물에 잠긴 진영에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결국 관우는 번성 포위를 풀고 남쪽으로 철수한다. 우금은 옆구리에 화살을 꽂은 채 기적 같은 반격 기회를 잡았고, 팡덕을 잃은 설움을 수천 화살비로 되갚았다. 관우는 사수구를 거쳐 망강까지 내려가다, 여몽이 미리 파견한 육손·주연 부대에 길을 막힌다. 마이성 성벽에 오른 관우는 남은 병사 삼백과 함께 결사항전을 외쳤지만, 밤마다 병사들이 담을 넘어 항복했다. 결국 관우와 아들 관평은 성문 밖으로 돌격해 강가 갈대밭에서 포위망을 뚫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붙잡힌다.
손권은 관우를 직접 만났다. 강동의 달빛 아래, 관우는 포박된 채 서 있었고, 손권은 칼 자루를 짚으며 “형주는 불과 물의 사이에 놓였는데, 그대는 왜 벗을 벗으로 여기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관우는 고개를 들고 “호랑이가 스스로 꼬리를 아끼지, 여우가 어찌 호랑이 꼬리를 노리는가”라고 맞받았다. 그 말은 스스로의 오만함조차 꺾지 않은 최후의 당당함이었다. 손권은 침묵 끝에 목을 끊게 하고, 그 머리를 조조에게 보내 위와의 관계를 매조지었다. 조조는 관우의 머리를 향해 예를 갖추고 관작을 추증하며 영혼을 달랬지만, 촉과의 결별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촉한의 성채인 성도에서는 비보가 겨울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유비는 식음을 전폐하고, 장비는 군막 기둥을 주먹으로 부수며 피를 토했다. 제갈량은 말없이 초롱불을 줄였다. 유비는 백리장성을 쌓던 공사를 중단하고, 대신 강을 거슬러 동정호에 집결하라 명했다. “형주를 잃고 관우를 잃은 설움은 오직 불로 씻겠다”는 선언이었다. 장비는 스스로 오의 수군을 막겠다며 군사 2만을 자원했고, 조운은 북연병을 모집해 후방을 맡겠다 청했다. 제갈량은 오와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을 알았지만, 유비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손권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관우의 마지막 기개가 강동에도 전해져, 백성들 일부가 “의인이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여몽은 승전 연회를 치르다 급작스러운 병을 얻어 사흘 만에 쓰러진다. 사람들은 관우의 원혼이라 수군수척 떠들었고, 손권은 전쟁 후유증을 두려워했다. 그는 새 장수 여반과 주연을 임명해 백령전 외곽을 지키게 하고, 육손에게 전군 재배치를 맡겼다.
허창의 겨울도 뒤숭숭했다. 조조는 관우의 죽음으로 촉과 오 사이가 틀어진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무릎 관절을 짚으며 “내 나이 육십을 넘었으니 천하를 재단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독백을 남겼다. 그는 양쯔 강 이남으로의 재원 확충을 위해 둔전제를 확대했고, 사마의에게 병서 편찬을 지시했다. 또한 조비·조창 두 아들에게 각기 옹주와 기주를 관리하게 하여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다. 허저는 심야 순찰 중 북문에서 얼어붙은 성루를 두드리며 “왕업이 완성되려면 남쪽 불씨를 끄는 손길이 필요하다”고 읊조렸다.
삼국지 4권의 마지막 장면은 겨울 새벽, 백제성 언덕 위에 선 제갈량과 유비의 실루엣이다. 유비는 관우의 영정을 품에 안고 강 건너 붉은 하늘을 바라본다. “내 동생의 한을 갚지 못하면 이 몸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제갈량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서녘에서 피어오르는 박달나무 연기처럼, 복수의 기운이 천지에 서린다. 강가의 억새는 얼어붙어 하얗게 빛나고, 초승달은 으스름한 물결 위에 희미하게 떠 있다. 신하들은 마른 입술로 군량 계산서를 넘기며, 다가올 화염과 철의 계절을 예감한다. 이로써 4권은 충과 오만, 동맹과 배신이 만들어낸 피의 참극, 그리고 한을 응축한 복수의 서곡을 끝 페이지에 새긴다. 어둠이 짙어진 자리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는, 다음 권에서 폭발할 유비와 손권의 전쟁을 부르는 전주곡이었다.
이처럼 네 갈래 야망이 다시 팽팽해진 지점에서 책은 막을 내린다. 적벽 이후 잠시 고요해 보이던 천하는 관우의 최후와 한중의 횃불로 또다시 들끓었고, 위·촉·오 세 주인은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 날 선 도끼를 간다. 독자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붉은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가 다음 권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숨을 고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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